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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에도 감사

휴가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죠.

요즘

아침과 저녁은 물론

시도 때도 없이 거리에 차가 넘쳐요.

아직 말복이 남았으니

여름 날씨도 여전히 덥고요.

 

 

저녁밥을 먹었는데도

뭔가 아쉬워요.

이럴 때 탄수화물과 당만 있으면

천국 아닌가요?

 

 

입맛 천국이요.

😛

 

 

책상에 굴러다니는

라임향 또띠야 칩에 얹어먹을

멕시코식 샐러드

피코 데 가요 Pico de gallo를

만들어 보았어요.

살사 프레스카 salsa fresca라고도

부른답니다.

 

 

 

 

 

멕시코 샐러드 피코 데 가요1 by 할미꽃소녀

 

 

재료 구입을 하다 보면

작은 재료 한 두가지는 잊어버려요.

그러면 다시 장보기가 귀찮아서

대충 만드는데,

나중에 맛을 보면

빠지면 안되는 재료가 있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레시피로 만드는

피코 데 가요에는

허브의 한 종류인

실란트로 cilantro를 꼭 넣는답니다.

한국에서는 고수라고 부르지요.

이 고수의 향긋함이 빠지면

마치 김 빠진 사이다 같은 느낌?

 

 

사소한 요리 재료라도

꼭 필요한 때에 넣어야 하는 것처럼

 

 

집,

일,

가족 등등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들이 있지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늘 가까이

대하다 보면 무심해지더라고요.

그 소중함을 잊고 살다가

어느 순간 아차 하고

깨닫게 될 때가 있죠.

 

 

제겐 집이란

하루 중 머무는 시간이 짧다 보니

그저 좀 요리하고 대충 잠자는 곳쯤으로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러다가

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기회는 아이러니칼 하게도

홧김에 가출한 사건(?) 이후랍니다.

 

 

 

 

 

멕시코 샐러드 피코 데 가요2 by 할미꽃소녀

 

 

 

 

몇 년 전 일입니다.

한밤중 사춘기 아들과 작은 다툼이

큰소리로 번졌어요.

흔한 드라마 스토리에서는

사춘기 자녀가 반항심으로 가출하는 것

아니었나요???

 

 

제 화를 못 이겨

이번에야말로

엄마로서 뭔가를 보여주고 말 것이다..라는

굳은 신념으로 문을 박차고 집을 나왔지요.

 

 

나중엔 저의 순간적인 오기가

얼마나 헛된 무리수였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날 그 순간에는

정말 제 마음이 제 것이 아니더라고요.

 

 

 

 

 

 

멕시코 샐러드 피코 데 가요3 by 할미꽃소녀

 

 

 

 

 

초겨울 찬바람을 뒤로하고

차 키를 들고 집을 나왔지만

막상 갈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카톡의 그 많은 이름들을 하나씩 넘겨보아도

XXX...

그때라도 알량한 자존심을 꺾고

슬그머니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아들이 게임하는 틈을 타

집으로 들어가면 되었건만

그렇게 쉽게

아들에게 지는 것이 싫었죠.

 

 

결국 밤 12시가 다 된 시간에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집 가까운 호텔밖에 없더라고요.

 

 

호텔에 투숙하려니 프런트 데스크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신분증을 요구했어요.

 

 

운전면허증을 보여주면서

내 집이 이 근처인데 갑자기

물이 안 나와서 예약도 없이

여기에 왔다며

데스크 직원 그 누구도

물어보지 않는 이 곳에 오게 된 경위를

상세하고도 장황하게 늘어놓는

제가 좀 이상하다 여겨졌는지

저를 보는 직원 표정이 왠지 순간

부자연스럽더라고요.

 

 

 

 

 

멕시코 샐러드 피코 데 가요4 by 할미꽃소녀

 

 

 

 

룸 키를 받고 호텔 방안에 들어왔지만

아들과의 다툼으로

마음속 화가 가시질 않아

씩씩대며 눈물 콧물 찔찔 짜면서

낯선 침대에 엎치락뒤치락하다

간신히 잠이 들은 것 같아요.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부스럭 부스럭 문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잠이 깨었지요.

호텔 방문은 단단히 잠그고

맨 위에 보조장치까지

걸어놓았었는데요.

 

 

얼떨결에 일어나 문 앞 손잡이를 꽉 잡고

동전만 한 유리 구멍으로 밖을 들여다보니

호텔 유니폼을 입은 남녀 직원이

청소용 도구를 들고

문밖에 서있는 거예요.

 

 

긴장이 되어

보조장치는 그대로 걸어둔 채로

살짝만 문을 열고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얼렁뚱땅 시선을 돌리며

아니 뭐 지금 청소 중인데

아마도 옆방이랑 착각해서

잘못 열을 뻔했다며

정중하게 죄송하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혹시 청소할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멕시코 샐러드 피코 데 가요5 by 할미꽃소녀

 

 

노, 노, 노 땡큐...

피곤해서 자야 하니 저를 도와줄 일도 없고

괜찮다고 돌려보내고 나니

넘 어이가 없고 황당한 거예요.

셀폰을 열어보니

글쎄 새벽 4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어요.

침대에 다시 누워 잠을 청하려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어요.

새벽 4시에 시체처리반이야 뭐양???

😁😁😁

호러 무비가 갑자기 코미디가 

된 것 같았어요.

 

 

누가 봐도

울어서 새빨개진 토끼눈을 해갖고

밤 12시 댕댕댕

한밤중에 예약도 없이

혼자 와서 빈방을 찾으며 횡설수설한

이 빼빼 동양 아줌씨가

호텔 직원의 예감상

아마도 오늘 밤

이 세상 하직 인사차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나 봅니다.

 

 

혹시라도

오늘 밤이 디데이인가?

뭔 일을 저지를 듯한 제가

몹시 염려가 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새벽에 기습 점검차(?)

호텔 룸 메이드를 보낸 것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에서 밤새 게임했을 아들 녀석은

제가 집에 들어오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았을테고,

 

곰 같은 남편은

지 성질에 지가 제 발로 걸어 나갔으니

화 풀리면 뚜껑 닫고

돌아오겠지 생각하며

 

둘 다 잠만 쿨쿨 잤던 것 같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저는

쓸데없이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었네요.

ㅋㅋㅋㅋㅋ

 

 

 

 

 

멕시코 샐러드 피코 데 가요6 by 할미꽃소녀

 

 

 

그다음 날까지 제 화는 풀리지 않아

하루 더 호텔에 스테이하며

시위를 하려 했지만

 

 

호텔비가 넘 아깝고

가출의 성과도(?) 그다지 시원치 않은 듯하여

아무 말 없이

집으로 기어들어 왔답니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항의할까 하다가

넘 어이가 없어

(영어로 설명이 안될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나왔지요.

 

 

그 이후로도

사춘기 아들과 수없이 싸웠지만

이 사추기 아줌마가

더 이상 쓸데없는(?) 가출은

안하게 되었지요.

 

 

그날 이후로

가족에게 시위를 하든

가족과 언쟁을 하든

혼자서 단식을 하든

 

화가 날 때는

한 박자를 쉬어야 한다는

인생의 리듬을 깨달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문을 박차고 나오면

금전적인

정신적인

육체적인

손해라는 것을 알았고,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싫으나 좋으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집이라는 진리를 터득했답니다.

 

 

 

 

멕시코 샐러드 피코 데 가요7 by 할미꽃소녀

 


오래전에 들은

세바시 강연 중에서

강연자 분과 그 내용은

잘 생각이 안나는데

제목이 잊히지가 않아요.

 

 

"마음이 지옥일 때"라는

제목이었는데요.

 

 

가출을 통해

쬐금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과정을

어수선한 글로 썼지만,

그때 제 마음이 바로 지옥이라면

지옥이었답니다.

 

 

마음을 돌려

지옥에서 벗어났지만

 

 

감사했던 것은

비록 나의 집이 천국같이 행복한 곳은

아닐지라도

그저

돌아와 두다리 뻗고 머리 뉘일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만약 집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면

과감하게

가출을 확 저질러 보세요. ㅎㅎㅎ

시체처리반이 예고없이 찾아오면 

나를 기다려주는 집이란 곳이

얼마나 따뜻한 공간이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요?

 

 

사는 것이 피곤할 땐

 

 

오늘밤

방황하지 말고

피코  데 가요,

내집으로 가요.

😍😍😍

 

 

 

 

 

 

멕시코 샐러드 피코 데 가요8 by 할미꽃소녀

 

 

 

복잡한 인간관계에 매여

피곤한 일상에 지쳐서

 

그렇게

길을 잃고 헤매면 헤맬수록

머물고 싶은 곳은

집이 아닐까요?

 

 

코로나로 인해

집콕해야 하는 이 시간이 길어지니

다들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집콕하고 싶어도

언젠가는

정말 집 문을 나서야 할 날이 오겠죠.

다 남겨놓고

떠나야 할 날이 온다니까요.

 

 

어려운 시간일수록

지금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집에 머물 수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영원한 집도

소망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