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과 월이 합쳐져
"십월"이라는 합성어가 되었는데요.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해서
자음이 빠지면서
시월이라고 읽게 된 거라 하지요.
겨울을 기다리는 이 시월은
겸손한 시 한 편이
어울리는 계절 같아서
저는
시월(詩月)이라고 불러보고 싶네요.
아마도
결혼하신 많은 분들이
시월드는 피해 가고 싶어도,
시월의 월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꾹 담고 싶은
소중한 시간일 것 같아요.
여름 전품목 재고정리 세일 문구에 혹해서
80퍼센트 할인받아 사놓은
여름 롱 원피스는
한 번도 입을 기회가 없어서
옷장에서 잠만 재웠는데요.
가격표도 떼지 못은 푸른 물결님은
거울에 한번 비춰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내년을 기약해야겠어요.
가을 재킷도 건너뛰고
이젠
겨울 패딩을 꺼내 입어야 할 것 같아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거든요.
비록
지나간 계절에 하고 싶은 것은 놓쳤지만
지금 흘러가는 이 시간엔
똑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서
남편과 함께
숲 속 길을 달려왔어요.
곱게 물든 한국의 단풍사진이
카톡을 통해서
태평양을 건너 날아올 때마다
미국의 지인분들이 찍은
가을 사진이 프로필 사진으로 바뀔 때마다
저도 시월이 가기 전에
가을 풍경을 담아보고 싶었거든요.
매년 단풍을 기다리다가
바쁜 일상에 한주일, 또 한 주일을
휙휙 보내면
앙상한 나무들만 남게 되는 11월,
그러다가 눈 내리는 12월로 넘어가곤 했죠.
그래서 이번엔 부지런 떨어서 왔답니다.
며칠 전 만난 아들 친구 맘에게
날을 잡아 한번 함께 산에 가자고 하니
지금 산에 가면
아마 실뱀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대답하며 노 땡큐😝
그날은 하하하 웃으며 넘겼는데
숲 속에 들어오니
그 생각이 번뜩 나더라고요.
"소니아, 웰컴....
이제나 저제나
할멈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면 어떡해요.
몇 년 전에 아들과 캠핑 가서
곰가족도 본 적이 있어
그때 생각도 떠올랐고요.
혹시 뱀이 나타나면
저는 이렇게 나뭇잎 뒤에 숨어보렵니다.
대신 남편을 뱀에게 먹잇감으로(?)
확 밀어줄 거예요.
😁😁😁
비가 살짝 내린
가을 숲길은
참 조용하고 고요해요.
누가 왔다 갔는지
며느리도 몰라요.
조선명탐정도 알쏭달쏭.
셜록 홈즈도 어리둥절.
발자국이 감쪽같이 하나도 안 남았거든요.
여름엔 개구쟁이들이
이곳 숲 속 바위 옆 개울가에서
물장구 좀 치고 놀았을 것 같네요.
노란 잎 사이로 갈색 잎,
갈색 잎 사이로 푸른 잎,
푸른 잎 사이로 점박이 잎도 있어요.
마치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온갖 잡다한 생각처럼요.
비구름 지나가는 회색빛 강물 위
노란 잎 하나는
좀 쓸쓸해 보이기도 하네요.
벤치에 앉으면
호수 속에 비친 가을산이
눈에 들어와요.
비 오고 나니
멀리 어렴풋이 무지개도 떴답니다.
아직 단풍은 오고 있는 중이지만
이만하면 시월드 괜찮지 않나요?
"지나치게 걱정하다가
찾아온 행복을 지나치지 않길"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작은 행복조차 품지 못하고 산다는
책 한 구절이 생각났어요.
남은 두 달
11월과 12월은
어떤 색으로 채우고 싶으신지요.
비가 오더니
오후 기온이 더 쌀쌀하여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지만
숲길을 걷고 오니
2021년의 플래너가 생각나서
꺼내보았네요.
숲에서 끝내지 못한 다짐을
가을 나뭇잎 닮은 카드에 적어보았네요.
컴퓨터 키보드가 아닌
제 손글씨 솜씨를(?) 발휘해서요.
숲 향기 대신
손재주 많은 지인이
직접 만들어 전해준
캔들의 향기가
식탁 위에 잔잔하게 풍기네요.
말린 꽃을 넣어 만든 꽃 향초가
넘 이뻐서 촛불을 못 키고 바라만 봅니다.
가을 사진은 디지털로 담았지만
가을 감성은 아날로그로 즐겨본
하루였네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잊혀진 계절 노래 가사 중에서>
시월을 끝은
시처럼 아름다운
레트로 노래로 마치렵니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통과 공감의 하트빵🧡 잊지 마시고요.
잔잔한 삶의 이야기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