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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아들과 함께 만든 굴석박지와 동치미

 

인생의 황금기 같은 20대를

만약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깔일까요?

 

무지개색까지는 안되더라도

 

싱그런 봄꽃 새싹 연두색

뜨거운 여름 태양 빨간색

낙엽진 가을 숲속 고동색 

눈내린 겨울 바다 하얀색

 

이라면 좋을 텐데,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니...

공부에,

취업에,

재정문제에

답 없는 검은색,

아니

아예 색도 느낄 수 없는

무채색으로

느끼며 살고 있을까요?

그림 선물 by 쌩도령

 

저희 집에도 한 마리 있답니다.

이제 막 스무 살을 지나고 있는

대학생 아들 쌩 도령이라고요.

 

작년 12월이 끝나갈 무렵

페인팅 카페에서 직접 그렸다며

알 듯 모를 듯한 그림 선물을 주더라고요.

(근데 그 의미 분석은 안되네요.)

 

지금이 얼마나 빛나는 시간인 줄

모르니까

매일을 물쓰듯 펑펑

쓰고 있답니다.

깨어있는 시간엔 하루 종일

셀폰과 랩탑에만 붙어있어요.

팬데믹으로 인해

대학 학기는 시작되었지만

기숙사로 가지 못하고

집에서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듣고 있는데요.

 

하루에 목소리 한번 듣기는커녕

식사시간도, 자는 시간도,

밤낮이 바뀐 생활 습관도

다르다 보니

좁은 한 공간에서 같이는 있지만

함께 거주하는 한가족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내 아들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홈 스테이 하숙생을 한 명 데리고

있다고 여기며,

제가 일하러 나가든 쉬는 날이든

무심한 태도로

마음을 다스리며 신경 끄기 기술을

아무리 발휘해도,

 

수업시간 5분 전 알람 해놓고

침대에 누워 수면안대는 그대로인 채

귀에다 이어폰만 꼽고서

수업을 듣고,

그나마도 싫은 날엔

리코딩한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오죽하면 제가 새벽에 출근할 때면

그제야 밤 근무를 끝내고

귀가하는 사람처럼 전등을 끄고

아침잠을 시작하는 

이 아드님을 볼 때면

 

김치 뚜껑 열어 올라오는 좋은

유산균이 아닌

온갖 잡탕 균이 제 마음속에

부글부글 댄답니다.

 

성경말씀엔 분명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녀를 존중하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양육하려고 해도

부모의 

화 참기

큰소리와 잔소리 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코로나 때문에 갇힌 스무 살의 마음과

자유도 한편 이해가 되긴 하지만요.

이렇게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시간을 자기만의 색으로 채운다면

흰색의 도화지는

더 큰 자유와 기쁨의 열매로 

온갖 색을 다 품을 수도 있을 텐데요.

아마 집집마다 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의 마음은 

비슷할 것 같아요.

 

며칠은 중간시험이 있어서

좀 집중하는 것 같더니

다시 띵까띵까 하는 모습에

제 화가 확 올라오더라고요.

며칠 전엔 더 참으면 병 되겠다

싶어서 쌩도령에게

밥을 먹으려면 밥값을 해야 하는

인간의 기본 도리를 짧게 나열하며(?)

붙잡아 앉혀놓고 같이 석박지를

담게 되었답니다.

 

신문지 깔아놓고

열심히 무 썰고 있는 모습을 뒤에서

한 컷,

하지만 함부로 초상권 침해하면

안 되니까

피어싱 한 귓볼을 포인트로 해서

앞판은 확실하게

가렸답니다. ㅋㅋㅋ

 

굴석박지  by 쌩도령

 

날카로운 칼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뭐 너 때문에 매일같이 이 엄마의 마음은

수도 없이 베였다,

잘못 다루면

뭐 네 손가락 밖에 더 다치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요.

 

굴석박지 by 할미꽃소녀와 쌩도령

 

처음엔 좀 정성껏 큰 무를 숭덩숭덩

잘도 자르는가 싶더니, 

점점 갈수록 무는 예상대로(?)

직사각형이었다가

삼각형이었다가

가늘었다 뚱뚱했다가..

 

그래 봤자 우리 가족이 먹는 것이니,

엉망진창이어도

노 프라블럼! No problem!

네버 프라블럼! Never problem!

 

 

다행히 오랜만에 다정한 대화로

고춧가루 양념 싹싹 버무리듯

우리의 마음도 주고받았고,

 

굴석박지 완성 by 할미꽃소녀와 쌩도령

 

값싼 노동력 이용하는 김에

잘되었다 싶어

다음날 혼자 담으려 했던

오색 동치미까지 다 끝내서,

 

오색 동치미 by 할미꽃소녀와 쌩도령

 

럭키 세븐 7통을 꽉꽉 채웠으니

오늘의 미션은 성공한 걸까요?

 

 

오색 동치미  by 할미꽃소녀와 쌩도령

 

 

미국 이민 와서 어느 아버님이

아들과 함께

오랫동안 델리 비즈니스를 하셨대요.

장성한 아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와의

평소 대화는

"아들아, 햄 좀 얇게 썰어,

그래야

남아"

였다고 해요.

 

나중에 만약 엄마인 저와의 대화를

추억한다면

"무좀 예쁘게 잘 썰어,

그래야

와이프한테

살아남아"일까요?

 

석박지에 살포시 몸담고 있는

굴들이 익어서 늘어져있어요. 

오늘 또 늦게까지 침대에 늘어져 잇는

아들처럼요.

 

그래도 함께 담근

석박지가 드디어 익어서

오늘은 

꺼내 먹을 수 있으니

굴보다 더 맛있고

귤보다 더 시원한

꿀저녁이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