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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질 나이, 사랑니만 빠지다🦷

아침 기온이 영하 15도로 떨어지고 
겨울바람까지 쌩쌩 불던 날.

 

 

 

 

 

겨울저녁1 taken by 소니아




퇴근길의 겨울 저녁의 노을이

아름답다고 느낄 여유도 없이

마음 철렁했답니다.

제 아들인 쌩도령이 글쎄 

사랑니 4개를
겁도 없이 한꺼번에 뽑았거든요. 

 


6개월 전에 정기검진 했을 때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는데, 아마 양치 중에

좀 불편함이 있었나 봅니다. 

 

 

만약 빼려면

나중에 시간차를 두어서

2개씩 2번에 나눠서 빼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건만 
이 아들의 그 똥고집은 아무도 못 말려요.

 

 

대학병원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는
예비사위가 얼마나 곤란했을지
그림이 그려집니다.

10살이나 어린 철없는 처남이 와서
두 번 방문하기 귀찮으니

사랑니를 한 번에 다 뽑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니까요. 



물론 
한 번에 발치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의사로서의 신중한 판단은

당연히 있었겠지만요.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제가 일하는 곳에도
요즘 출근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많아
제 마음도 어수선한차에
날씨까지 좋지 않은 이 겨울에
갑자기 생니 4개를 빼버린 아들의 건강이 
너무나 걱정되더라고요.

 

 

20년 전이기는 하지만
가깝게 지내던 분의 아버님이
이빨 2개를 뽑고 돌아가신 적이 있으셨어요.
연세가 많으신 그분을 보고 함부로
이는 뽑을 것이 아니란 걸 그때 느꼈지요. 


그분은 원래 몸이 안 좋으셨는데

이를 뽑고 식사를 제대로 못하셨던 것인지,
아니면 이빨을 치료한 후 몸이
급속히 쇠약해지신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갑자기 돌아가셔서
남은 식구들의 충격이 컸었던 것 같아요.

 

 

 

 

 



겨울저녁2 taken by 소니아




쿨하게
사랑니를 확 제거한 아들은
소화하기 좋은 음식만 간신히 삼키고 나서 
진통제를 먹고는

이틀간은 말없이 깊은 잠에 들더라고요.


3일째 되던 날
잠든 아들에게 이불을 제대로 덮어주고
새벽 출근길을 나서려는데
불현듯 나쁜 생각이 드는 거예요.


혹시나 싶어 숨은 잘 쉬고 있는지
아들 코에 제 귀를 밀착해서 대보니
아기처럼 쌔근쌔근
콧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날 저는 알았지요.

가족들이 숨쉬기 운동만 해도

정말로 감사한 일이란 것을요. 

 

 

그제야 안심하며 출근을 했고,

입맛 없을 아들을 위해
들깨죽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즐겁게 퇴근도 했답니다. 


삶은 닭살을 결대로 곱게 다듬고
야채를 손질하고
찹쌀과 퀴노아를 준비했지요. 






 

들깨죽1 by 소니아





비쩍 마른 아들은 편식도 심하다 보니
혹시라도 냄새 강한 들깨 때문에
노땡큐 할 것 같아 걱정이 되더라고요.
진짜 정성을 들여 끓였으니
꼭 먹여야겠다는
엄마의 의지가 생겼습니다.


무슨 음식이냐는 아들의 질문에
음식의 이름을 대충 얼렁뚱땅 말해서
이 상황을 빨리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살짝 입술을 오므리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들개죽~~
이렇게 발음을 뭉그러뜨렸지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갑자기 제 마음이 싸한 느낌이 들었어요.
들개라니~
엄마의 지극정성으로
야산의 들개를 잡아다가 죽을 끓였다?
🤐🤐🤐


옛 사극에 보면
아픈 가족을 위해 산에 가서
산삼을 캐고 열매를 따고

그런 것은 있었지만
들개라뇨?
😅😅😅





 

들깨죽2 by 소니아

 


머릿속으로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갑자기 웃음이 났네요.
밝아진 제 모습을 본 아들은

아마도 엄마 마음이 편해졌다고

생각이 들었나 봐요.

 

 

모처럼 함께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며
맛있는 죽을 싹싹 비우고 나니
들개고 들깨고
아들과 저의 뱃속으로
얌전히 다 들어갔답니다.


며칠이 지나니
언제 아팠냐는 듯이
통증도 싹 가라앉았어요.


아들이 좋아하는

삼계탕과 떡만둣국을 끓여서
기력도 보충해주었고요.
확실한 몸보신이 더 필요할 것 같아
배와 사과를 싹싹 갈아서 만든

천연 양념으로
LA갈비도 만들었답니다.






갈비구이1 by 소니아





21살은 돌도 씹어먹을 나이니까요.
사랑니 없어도
갈비뼈쯤은 오도독오도독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사랑니를 빼어 허전한
21살의 마음은
들깨죽과 갈비로 채워졌는데요. 


사랑니는 다 빠져버렸으니
이젠
사랑에 빠질 일만 남은 걸까요?






갈비구이2 by 소니아



겨울방학을 마친
아들은 새로운 학기를 위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어요.


매번 풀떼기만 먹다가
아들 덕분에 갈비까지 얻어먹고
며칠간 모처럼 몸보신했다며
좋아라 하는 남편은
아직도 사랑니를 갖고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내일부터
남편의 밥상엔
갈비는 저리 가라!
다시 풀떼기 모드로 셋업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 고백이 아닌
사랑니 고백으로는
제 마음을 움직일 수 없거든요.

 

 

마음을 얻지 못하면

갈비는 그렇게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거든요.

😜😜😜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소통과 공감의 하트빵🧡 잊지 마시고요.
잔잔한 삶의 이야기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