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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족을 위한 위로

만약에
시간을 한 번이라도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나무 1 taken by 할미꽃소녀

 

 


저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아닌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으로 기억되는

그날로 가고 싶답니다.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우울증으로 세상과 이별한 형부와의

마지막 만남

그 순간으로요.

 

지금부터 25년 전

3월 말쯤으로 기억됩니다.

형부가 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

평소 과묵한 성격이었지만

살아온 인생이 (겉으로) 보기엔

평탄했고

우울증을 짐작할 만큼

특이한 징조가 없었기에

형부의 입원은 가족 모두가 

많이들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그저 지나가는 감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일을 마치고
서점에 들러 수필집 2권을 사 가지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머리 식힐 수 있는 만화책이나

사 오지 그랬냐며

짧게 농담을 건네며 미소 지었던

형부의 모습은 예전과 비슷했지만,

안경 너머의 눈빛은

몹시 흔들리고 불안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만약 제가 우울증이라는 병을

조금만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그래서 함께 마음의 문을 한 뼘만

열 수만 있었다면,

 

형부의 그 우물 속 가장 밑바닥의
깊은 이야기를

길을 수만 있었더라면,

 

그것이 혹시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다는

짐작이라도 하였다면,

 

한 달 뒤 우리 가족에게 폭풍처럼 닥쳤던

그 비극은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생각이 지금도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나무 2 taken by 할미꽃소녀

 

 

 

병원을 방문하고 난 뒤

일주일 후쯤에

형부가 퇴원했다고 듣게 되었지요.

 

집으로 다시 돌아온 소식에 안심하며,

형부의 근황은 잊어버리고 

바쁘게 생활하던 한 달 뒤쯤이었어요.

 

5월의 신록을 기다리며

4월이 거의 다 지나가던 날이었지요.

출근 준비 중이었던 그날 아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화기 너머 형부의 죽음을

알리는 엄마의 울부짖음속에

저의 시간은 그대로 멈췄습니다.

 

검은 정장을 찾아 갈아입고

제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은 채로

출근을 했어요.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

과장님께 한마디 말씀만 드리고

5분 만에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사망원인은 심장마비라고

거짓말을 하면서요.

 

39세의 돌연사 소식을 전해 들은

동료들의 놀라움과 한숨소리를

뒤로하고요.

그때 제 마음속엔

사람들에게 우울증이라는 말을

꺼낼 용기가

도저히 나지를 않았으니까요.

 

병원의 영안실엔 무거운 침묵만이

흐른 채 하나둘 소식을 듣고 모인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은

차가운 마룻바닥 이곳저곳에

모두 망연자실 흐느끼며 앉아있었습니다.

 

밤새 내리던 비바람은 그쳤지만

3일 동안 언니의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미처 날뛰는 듯한 그 통곡은

동물의 몸부림에 가까웠지요.

그런 언니를 바라보는 가족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유서 한 장 없이

세상을 정리한 사람에 대한

원망만을 토해내는 일이었지요.

 

설마 죽음의 길로 갈 거라고는

우리 가족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 슬픔은 어떤 슬픔보다도

더 컸습니다.

사랑하는 언니를

소중한 두 아이를 남기고

그렇게 쉽게 먼길을 떠날 거라고는

단 한순간도 생각 못했으니요.

 

형부는 당시 일하던 직장이

지방으로 이전되어

다른 일을 찾아보며

준비 중이었기에 작은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환경이었기에

무엇이 그렇게도

형부를 힘들게 하였는지

남은 가족들에겐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으니까요.

 

3년보다도 더 긴 것 같은

아니 마치 30년 같은

3일을 보내고

입관을 하고 장례를 마친

공원은

온통 사월의 꽃들로 덮여있었습니다.

 

 

 

분홍난 taken by 할미꽃소녀

 

 

 

장례식에 참석한 분들의

식사대접을 위해 음식점에 갔습니다.

차갑게 식은 갈비탕을 앞에 놓고

친척들은 언니에게
한 마디씩 말을 했습니다.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산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먹고 버텨야 한다고요.

저도 그런 줄 알았지요.

먹으면 기운을 차리고

정신을 차리고

살 수 있는 줄 알았지요.

 

하지만 장례식이 끝나고서야

형부의 죽음은 현실로 다가와

그때부터

살아도 죽은 것 같은 우리 가족의

무너진 삶은 시작되었고

그렇게 시간은 강물처럼

세월의 강을 흘러 흘러

파도에 휩쓸려 여기까지 떠내려왔습니다.

 

해마다

이쯤이 되면

매번 비바람이 불어옵니다.

비록 못 견딜 것 같은 폭풍우는 그쳤지만,

아직도 4월의 비가 이렇게 지날 때면

차라리 꿈이라면...

뛰어갈텐데...

날아갈텐데...

마음속 바람이 멈추질 않아요.

 

저의 삶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온전히 승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형부가 안고 살았던 그 무거운

숙제들의 아픔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형부의 일 이후에

남편은 가장 가까운 가족 한 명을

우울증으로 잃기도 했습니다.

우울증은

복습도 안되고

예습해도 준비하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두 번의 슬픔에 쓰러져야 했습니다.

 

그래도

미국과 한국

각자의 자리에 남은

우리 가족들은

다시 일어났고 쉬지 않고

앞을 보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4월이 되면 이렇게 뒤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앞으로 남은 먼길을 더 씩씩하게

달리기 위한 회복의 여행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비록

남아있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전쟁 같은 사랑과 그리움을 안고 있지만

상처가 아무리 커도

달리기를 멈출 수 없어요.

뼈아픈 이별을 겪었기에

남은 사랑이 더 소중하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요.

 

언제쯤이면 

그렇게 예고 없이 맞닥뜨린 영영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런지는

아직은 모르지만요.

 

언제쯤이면

4월의 꽃잔치를 보면서

이쁘네, 참 이쁘네,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런지요.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듯이

언젠가는

이젠 정말 괜찮아, 모두 괜찮아하면서

하늘 위 흰구름처럼

상처 난 마음들이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오겠지요.

 

 

흰 꽃 taken by 할미꽃소녀

 

 

혼자 살아가는 주변의 1인 가족을 봅니다.

결혼을 안 하기도 했고,

이혼을 하기도 했고,

사별을 하기도 했고,

각자 많은 이유로 혼자 살아갑니다.

 

아픔을 삭이는 것도

남몰래 흘리는 눈물도

혼자만의 몫이겠지요.

 

그 아픔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4월이 다 가기 전에

하루도 잠잠할 날 없는 이 세상에서

1인 가족으로 살아가는

언니에게

또 많은 분들에게

짧은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무거운 글이 되었지만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어떤 이유로든지

큰 이별을 감당해야하는 시간이 있기에

 

웃으며 헤어지지는 못한다 해도

너무 많은 그리움을 남기지는 않기를,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의

이별의 거리가

바다를 덮고도 남을 눈물로

채워지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씁니다.

 

 

 

 

풍경 taken by 할미꽃소녀

 

 

 

비 온 뒤라

제 방 창문 앞에서 바라본 봄 잎들이

꽃처럼 빛나요.

오늘은 그래도 눈물을 참고서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속삭이는 정훈희 원곡으로도요.

흐느끼는 조관우 버전으로도요.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밭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셨다고요?

가족을 잃으셨다고요?

내 옆에 짝꿍이 없다고요?

 

혼자

남은

 

온리 론리가 

Only lonely

아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누군가에겐

가장 힘이 되는

온리

Only

One

 

외로운

당신은 

 

그 누군가에겐

가장

그리운

분이고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임을

기억하세요.

🧡